안성기 배우가 출연한 영화 '실미도' 스틸컷.
2026년 1월 5일, 한국 영화계에 슬픈 소식이 전해졌다. '국민 배우'라는 수식어가 가장 잘 어울렸던 배우 안성기가 향년 74세를 일기로 우리 곁을 떠났기 때문이다. 지난 2019년부터 혈액암 투병을 이어오던 그는 완치 판정을 받기도 했으나 결국 병마와 다시 싸워야 했고, 74세의 나이로 영면에 들며 69년 연기 인생의 막을 내렸다.
이 소식은 한국 영화계를 넘어 전 국민에게 큰 충격과 아쉬움을 안겼다. 문화예술언론사 아트그라운드는 한국 영화사의 살아있는 증인이자 영원한 별이었던 안성기 배우의 파란만장했던 삶과 작품 세계를 재조명하며, 그의 위대한 발자취를 돌아보고자 한다.
안성기 배우의 연기 인생은 남들보다 훨씬 일찍 시작됐다. 그의 나이 불과 5살이던 1957년, 고 김기영 감독의 영화 '황혼열차'를 통해 스크린에 첫선을 보이며 '아역 배우 안성기' 시대를 열었다. 당시 '동심천국', '십대들의 반항', '모정' 등 다수의 영화에 출연하며 해방 이후 혼란스러웠던 시대, 서민들의 삶과 애환을 대변하는 아역 연기로 큰 사랑을 받았다. 특히 '하녀'에서는 주역인 김진규와 이은심 사이에서 긴장감을 불어넣는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며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탁월한 연기력을 보여주기도 했다.
당시 대부분의 아역 배우들이 성인이 되면서 연기 활동을 중단하거나 사라졌지만, 안성기는 달랐다. 그는 70편이 넘는 아역 작품에 출연하며 쌓은 연기 경력을 바탕으로 성인이 되어서도 배우의 길을 묵묵히 걸어갔다. 그의 유전자에는 '배우'라는 숙명이 새겨져 있었던 것처럼, 연기에 대한 그의 순수한 열정은 꺼지지 않고 계속됐다.
아역 배우에서 성인 배우로의 전환은 녹록지 않았다. 대학 진학 후 베트남 전쟁 참전 군인으로 복무하며 약 10년 가까이 공백기를 가졌고, 제대 후에는 한동안 연기자로서 설 자리를 찾기 어려웠다. 하지만 그는 좌절하지 않았다. 그는 배우로서의 내실을 다지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고, 마침내 1980년 이장호 감독의 '바람불어 좋은 날'을 통해 스크린으로 화려하게 복귀했다.
이 작품에서 그는 도시로 상경한 세 청년의 삶을 통해 당대 젊은이들의 방황과 좌절, 희망을 섬세하게 표현해냈다. 당시 어수룩하면서도 순수한 청년의 모습을 탁월하게 그려내며 관객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고, 이 영화는 그를 아역 배우의 이미지를 벗고 성인 배우로 완전히 자리매김하게 하는 결정적인 전환점이 됐다.
이후 안성기는 1980년대 한국 영화 뉴웨이브의 선두 주자로서 수많은 걸작을 탄생시켰다. 이장호 감독의 '꼬방동네 사람들'(1982)에서는 도시 빈민의 삶을 리얼하게 그려내며 사실주의 연기의 정수를 보여줬고, 배창호 감독의 '꼬방동네 사람들'(1982)에서는 실제 빈민가의 모습을 완벽하게 재현해내며 평단의 극찬을 받았다.
또한 '고래사냥'(1984), '어둠의 자식들'(1981), '만다라'(1981), '깊고 푸른 밤'(1985) 등 굵직한 작품들에 연이어 출연하며 안정적이고 깊이 있는 연기력을 인정받았다. 특히 이 시기는 충무로가 군사 정권의 통제에서 벗어나 예술적 표현의 자유를 얻기 시작하던 때였고, 안성기는 그 중심에서 다양한 사회 문제와 인간의 내면을 탐구하는 영화들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며 한국 영화의 황금기를 이끄는 주역이 됐다.
안성기가 진정한 '국민 배우'의 반열에 오른 것은 199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 그의 활약 덕분이다. 그는 특정 이미지에 갇히지 않고 끊임없이 새로운 역할에 도전하며 자신만의 연기 스펙트럼을 넓혀갔다. 코믹과 진지함을 넘나드는 그의 연기는 대중적 사랑과 예술적 깊이를 동시에 만족시켰다.
1993년 개봉한 코미디 영화 '투캅스'에서 그는 박중훈과 환상적인 콤비 플레이를 선보이며 어수룩하지만 인간미 넘치는 형사 역할을 완벽하게 소화해냈다. 이 영화는 당시 박스오피스를 강타하며 대중적인 인기를 다시 한번 입증하는 계기가 됐고, 그의 넓은 연기 폭을 각인시켰다.
뿐만 아니라, 전쟁의 상처와 인간의 심리를 깊이 파고든 '하얀 전쟁'(1992)에서는 베트남 참전 용사의 고뇌를 섬세하게 표현하며 평단의 찬사를 받았고, 사회 비판적인 메시지를 담은 '개 같은 날의 오후'(1995)에서는 시위 현장에서 고뇌하는 중년 남성을 현실적으로 그려냈다.
1999년 이명세 감독의 '인정사정 볼 것 없다'에서는 그동안 보여주지 않았던 강렬하고 냉혈한 악역으로 파격 변신하여 스크린을 압도하는 카리스마를 선보였다. 이 영화는 안성기에게 '도전'이라는 배우의 가치를 다시금 되새기게 했고, 관객들에게는 '안성기는 어떤 역할이든 해낼 수 있는 배우'라는 확신을 심어주었다.
2000년대에 접어들어서도 그의 활약은 계속됐다. 2003년 개봉한 '실미도'에서 684부대 훈련대장을 맡아 카리스마 넘치는 연기를 선보였고, 이 영화는 한국 영화 사상 최초로 1천만 관객을 동원하는 대기록을 세우며 한국 영화의 새로운 이정표를 세웠다.
그는 젊은 배우들과의 조화 속에서도 중심을 잡는 연기로 영화의 완성도를 높이는 데 크게 기여했다. 이외에도 '라디오 스타'(2006)에서 철없는 가수 친구의 곁을 묵묵히 지키는 매니저 역할을 맡아 감동적인 브로맨스를 연기했고, '부러진 화살'(2011)에서는 사법 불신에 맞서는 대학교수를 열연하며 사회적 메시지를 던지는 작품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2012년 '남영동 1985'에서는 고문기술자 역할을 맡아 실제 사건을 기반으로 한 고통스러운 인물을 연기하며 또 한 번 연기 변신을 시도하기도 했다.
그는 어떤 역할을 맡든 자신만의 색깔로 캐릭터를 살아 숨 쉬게 했다. 때로는 우직한 가장으로, 때로는 냉철한 지식인으로, 때로는 비열한 악인으로 변모하며 관객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특유의 안정감 있는 연기력과 진정성이 담긴 목소리는 그의 존재 자체를 한국 영화의 상징으로 만들기에 충분했다. 170편이 넘는 작품에 출연하며 충무로의 산증인이자 버팀목 역할을 해온 그의 배우 인생은 그야말로 '성실함'과 '도전', 그리고 '헌신' 그 자체였다. "영화는 나의 모든 것"이라고 말했던 그의 인터뷰처럼, 그는 평생을 영화와 함께했으며, 영화를 통해 우리에게 많은 것을 선물했다.
안성기 배우는 2019년 혈액암 진단을 받은 후에도 연기에 대한 열정을 잃지 않았다. 투병 중에도 공식 석상에 밝은 모습으로 참석하며 복귀 의지를 드러냈고, 동료 배우들과 영화 팬들에게 희망을 선사했다. 마지막까지 배우로서의 모습을 잃지 않으려 했던 그의 투혼은 많은 이들에게 감동을 주었다.
그의 죽음은 한 시대를 풍미했던 배우의 퇴장을 넘어, 한국 영화의 한 페이지가 넘어가는 순간을 의미한다. 비록 이제 스크린에서 새로운 안성기 배우의 모습을 볼 수는 없지만, 그가 남긴 수많은 작품과 따뜻한 미소, 그리고 '국민 배우'라는 그의 이름은 우리 가슴속에 영원히 살아 숨 쉴 것이다.
한국 영화사에 길이 남을 위대한 배우, 안성기. 그의 열정적인 삶과 깊이 있는 연기는 앞으로도 오랫동안 많은 배우와 관객들에게 귀감이 될 것이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빌며, 영원한 국민 배우 안성기라는 이름이 영원히 기억되기를 바란다.
영화 한신 용의출현 스틸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