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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트리밍은 왜 스튜디오를 삼키려 하는가
  • 한종수 기자
  • 등록 2025-12-18 10:03:17
  • 수정 2025-12-18 10:2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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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플랫폼 중심 재편 속 할리우드 권력 지형 변화… 극장·제작 생태계 영향 주목


스트리밍 기업과 전통 스튜디오를 둘러싼 인수·합병(M&A) 논의가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었다. 워너브러더스디스커버리(WBD)가 파라마운트 스카이댄스의 적대적 인수 제안을 거부하기로 결정하면서, 할리우드 산업 재편을 둘러싼 경쟁 구도가 보다 선명해지고 있다.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WBD 이사회는 파라마운트가 제안한 적대적 인수안을 받아들이지 않기로 하고, 이르면 17일(현지시간) 주주들에게도 거부를 권고할 예정이다. 적대적 인수는 경영진 동의 없이 주주들에게 직접 주식 매수를 제안하는 방식으로, WBD 이사회는 해당 제안의 실현 가능성이 낮다고 판단한 것으로 전해졌다.

 

앞서 넷플릭스는 WBD의 영화·TV 스튜디오와 스트리밍 서비스 HBO 맥스를 720억 달러에 인수하는 계약을 체결했다. CNN 등 뉴스 채널은 인수 대상에서 제외됐다. 반면 파라마운트는 WBD 전체를 1080억 달러에 인수하겠다는 제안을 내놨지만, WBD 이사회는 만장일치로 넷플릭스의 제안을 선택했다.

 

이사회가 넷플릭스를 택한 배경에는 자금 조달의 확실성과 거래 구조의 차이가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파라마운트는 주당 30달러 전액 현금 지급을 제안했으나, 자금 조달이 엘리슨 가문 신탁에 의존한다는 점에서 불확실성이 제기됐다. 파라마운트 인수의 ‘백기사’로 거론됐던 사모펀드 어피니티 파트너스가 거래에서 물러난 점도 부담으로 작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 넷플릭스는 주당 현금 23.25달러에 더해 주식 교환(주당 4.50달러)을 결합한 구조를 제시했다. 특히 워너브러더스 픽처스, 워너브러더스 텔레비전, HBO 맥스 등 수익성이 높은 핵심 엔터테인먼트 자산만 인수하는 ‘카브아웃(carve-out)’ 방식을 택해 리스크를 낮췄다는 평가를 받는다.

 

업계에서는 이번 결정이 단순한 가격 경쟁의 결과라기보다, 스트리밍 기업과 전통 스튜디오의 전략 차이를 보여주는 사례로 보고 있다. 글로벌 스트리밍 시장 성장세가 둔화되는 가운데, 넷플릭스는 제작·배급·지식재산(IP)을 동시에 확보하는 방향으로 전략을 전환하고 있다. 전통 스튜디오의 방대한 IP와 제작 인프라는 이러한 전략에 핵심 자산으로 꼽힌다.

 

파라마운트 역시 극장 개봉 중심 모델을 유지해온 전통 스튜디오로서, 규모 확대를 통한 생존 전략을 모색해왔지만 대규모 인수에 따른 재무 부담과 규제 리스크가 동시에 부각되고 있다. 다만 WBD 이사회는 파라마운트가 자금 조달 우려를 해소하고 더 나은 조건을 제시할 경우 새로운 제안을 재검토할 수 있다는 여지를 남긴 것으로 전해졌다.

 

이번 인수 논의의 또 다른 쟁점은 극장 산업의 향방이다. 스트리밍 기업들은 극장 개봉을 점차 마케팅 수단이나 시상식 진입을 위한 단계로 활용하고 있으며, 짧은 상영 이후 플랫폼 공개로 이어지는 방식이 일반화되고 있다. 이에 따라 경쟁 감소가 제작 편수 축소와 중·소규모 영화 위축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이번 인수전의 향방은 할리우드의 제작·유통 구조 전반에 영향을 미칠 핵심 변수로 꼽힌다.

 

전문가들은 이번 인수전이 단순히 어느 기업이 더 커지는가의 문제가 아니라, 할리우드에서 누가 영화를 만들고 유통하며 관객이 어떤 방식으로 영화를 접하게 될지를 가르는 분기점이 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플랫폼 중심 재편과 기존 스튜디오·극장 시스템의 공존 가능성이 향후 할리우드 산업의 핵심 변수로 떠오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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